2017년 7월 18일 화요일

“태풍이 불면 돼지도 난다”…‘창업가의 일’

‘창업가의 일'. 구글캠퍼스서울 임정민 총괄이 이런 제목의 책을 냈다. 택배로 보내온 책을 하루 밤에 후딱 읽었다. 임 총괄은 실리콘밸리에서 공부했고, 미국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한국에서 창업했고, 엑싯(지분처분) 했고, 투자도 했고, 창업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창업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일을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글이 정확하고 메시지가 확실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제프리”(임 총괄의 영어 이름)한테 카톡을 보내 점심 같이 하자고 했다. 창업계 얘기나 하고 싶었다. 제프리가 좋다고 해서 날짜를 잡았는데, 욕심이 생겼다. 둘이 주고받는 얘기를 창업자들이 듣게 하면 어떨까? 창업자 몇 분을 합석시키면 어떨까? 제프리가 “좋다”고 해서 디캠프 입주 스타트업 대표들한테 단체카톡을 날렸다. 두세 분이 합석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여덟 분이나 지원했다. 나중에 두 분이 추가로 합류했다.


오늘 디캠프 4층 세미나실에서 제프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정사각형으로 둘러앉아 각자 소개를 한 다음 ‘창업가의 일'에서 발췌한 13개 키포인트 화면을 보면서 제프리의 얘기를 들었다. 제프리는 각각의 포인트에 대해 평균 5분 가량 설명했다. 중간중간 창업자들이 질문을 했고, 제프리가 답변을 했다. 한 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제프리와의 점심 이야기를 따로 정리하진 않았다. 책 내용을 발췌한 13개 키포인트만 공유한다.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페이스북 사용자 4가지 유형 : 나는 어디에 속하나?

페이스북 사용자는 천차만별인데, 브링검영대학교 연구팀은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relationship builders,” “window shoppers,” “town criers,” “selfies”.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관계형성자, 구경꾼, 소식전달자, 자기만족자(?) 정도가 될 것 같다. 조사대상자들한테 48개 질문을 던져 답을 보고 분류했다고 한다. 미국인 18~32세를 대상으로 조사/분석을 했기에 우리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형이 달라질 수도 있다. 쿼츠 기사를 간추리면…


페이스북.jpg


1) Relationship builders : 이 유형의 사용자들은 예전에 편지를 쓰고 유선전화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 친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이들에겐 페이스북은 오프라인 생활의 연장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페이스북은 내가 가족한테 사랑을 표현하고 내 가족이 나한테 사랑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유형의 사용자들은 페이스북을 공개공간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친구 친척과 자유롭게 사생활을 얘기할 수 있는 작은 허브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올리기도 하고 많이 보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다른 사람이 올린 포스트에 댓글을 달고 대화에 참여한다.


2) Window shoppers : 요즘 세상에서는 페이스북 안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은 사적 정보나, 사진, 글 등을 좀체 올리지 않는다. ‘좋아요’ 누르지도 않고 댓글도 좀체 달지 않는다. 한 마디로, “페이스북에서는 내가 관심 갖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쉽게 볼 수 있고, 이들이 무엇에 관심 갖고 누구랑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과 연결돼 있으려면 페이스북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한 이도 있었다. “페이스북 바깥의 삶을 더 좋아한다", “페이스북은 내 일상생활을 올리는 공간이 아니다. 내가 토요일에 무엇을 했는지 굳이 올릴 필요가 없다. 그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나랑 같이 있었을 거 아니냐.”


3) Town criers : 1인미디어를 추구하는 사람, 기자, 사회활동가, 이벤트 실행자 등. 이들은 페이스북을 ‘연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경우엔 페이스북 가상공간이 꼭 현실세계와 닮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알리고 싶은 정보를 널리 알린다. 대상은 가까운 지인부터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남들을 팔로잉 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다. 포스팅을 해놓고는 남들이 그걸 좋아하든 말든 관심 꺼 버리는 때도 있다. 이들은 큰 이슈가 터지면 마구 떠들고 최신 동향을 알린다. 이런 걸 하기에 가장 편한 곳이 페이스북이라고 생각한다. 사적인 정보는 별로 올리지 않는다. 이들이 페이스북에서 소통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친척 친구과) 소통할 땐 폰이나 문자나 DM을 택한다.


4) Selfies : 우리한테 아주 친숙한 유형이다. 이들은 관계형성자들과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동영상 올리고 현재 상태를 알린다. 관심 끌기 위해서다. ‘좋아요’가 많이 오르고 댓글이 많이 달리면 힘을 얻는다. 이런 식이다. “내가 올린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가 많으면 많을수록 동료들한테 더 많이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 찍어서 폰에 그냥 두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런데 그걸 페이스북에 올리면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결 보여주게 된다.”


여기까지다. 페이스북, 참 오묘하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고 향기가 느껴지고 분노가 느껴진다. 실제 모습과 다를 수 있다. 실제보다 예쁘게 꾸며진 모습일 수도 있다. 행간을 읽으면 오프라인에서 알지 못했던 특성도 느낄 수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 4가지 유형, 대체로 수긍이 간다. 그럼 나는? 광파리 페이지는 (3)번 Town Crier, 김광현 프로필은 (1)+(4)인 것 같다. (끝)

2017년 7월 5일 수요일

알토스벤처스 대표 “투자할 때 창업 경험 있는 창업자를 선호한다"

퇴근 길에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알토스벤처스 김한준(“한킴”) 대표의 투자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김 대표를 만나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해 가 봤다. 알토스는 2012년부터 한국에서 투자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로, 쿠팡, 배달의민족, 미미박스, 비바리퍼블리카 등에 투자했다. 김 대표의 이야기, 재밌게 들었다. 특히 '토스' 서비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 투자 과정 이야기가 재밌다. 조금만 소개한다.

알토스11.jpg

처음엔 펀드마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기업을 하나씩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매년 이런 기업 하나쯤에는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자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우리 목표는 투자한 모든 회사가 안전하게 성장해 엑싯(exit, 투자금 회수) 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한 회사 중 소수는 매우 크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목표다.

"투자기준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는 팀을 보고, 시장을 보고, 그리고 ‘왜 지금이냐?’를 많이 생각한다. 투자한 직후에는 사업이 잘 안 되고 10년 뒤에야 사업이 되는 사례를 많이 봤다. 조금 늦게 시작해 망하는 확률보다는 너무 일찍 시작해 망하는 확률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왜 지금이냐(Why Now)?’를 많이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내놓는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자들이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중요하다.

엑싯(투자금 회수). 빨리 하는 것보다 크게 하는 것을 선호한다.

"투자 대상 스타트업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박희은 수석 답변) 8, 90%는 추천에 의해 투자한다. 투자한 회사 대표가 추천해준 기업을 좋게 생각한다. 요즘엔 창업자들이 페이스북을 많이 쓰고 있어서 평판 체크하기가 쉽다. 콜드 메일이 많이 오는데, 읽긴 읽는다. 답장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다리 건너 추천받아 검토하는 팀이 많다.

알토스12.jpg

비바리퍼블리카는 소개 받지 않고 투자했다. 퀄컴 행사장에서 6개 팀이 발표했는데 비바리퍼블리카가 인상적이었다. 다음날 만나서 한 달 후에 투자했다. 이승건 대표가 자기 꿈을 잘 설명해 줬다. 핀테크 쪽은 모르는 게 많아서 금융 쪽 사람을 불러 이 대표를 만나게 했다. 만나기로 한 날 금융 쪽 사람이 먼저 왔는데, 그분이 대뜸 “그 회사에 아직 투자 안 했죠?”라고 물었다. “안 했습니다” 했더니 “투자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바로 직후에 이 대표가 와서 함께 얘기를 했는데, 미팅이 끝날 무렵에는 “투자 받을 때 우리 좀 끼워주세요”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이승건 대표, 설득력 있다. 그 정도 설득력이면 은행도 설득할 수 있고, 규제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국회 찾아가서 조리 있게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투자와 관련해) 후회스러운 일은 없나?” 리모택시에는 10억원 남짓 투자했는데 안 됐다. 하지만 ‘이런 실수는 자주 해도 된다’. 비트패킹은 후회가 된다. 사용자 수 백만명을 수 개월만에 만들었는데 우리가 더 열심히 못해서 그렇게 됐다. 회사는 200억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걸 마련하지 못했다. 70%까지는 마련했는데 매듭을 짓지 못했다.

"투자할 때 실패 경험을 높이 사는가?"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 대표 중에는 신용불량자도 있다. 창업 경험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창업을 경험해본 분은 고난이 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80% 이상이 실패 경험이 있는 창업자다. ‘실패’라기보다는 창업을 해본 창업자를 선호한다. (끝)


2017년 7월 1일 토요일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 “빚 갚으려고 사업 한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어제 서울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프라이머 데모데이 기조연설이었다. 손 회장이 대단한 분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강연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자신의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난관을 극복하고, 슬픔도 딛고 일어서고… “죽기 전에 내가 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 귓전에 남았다. 강의 들으면서 메모한 내용을 공유한다.

손주은31.jpg

죽기 전에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윤민창의투자재단을 만들었다. 되돌아 보니 성공적인 인생은 아니었다. 내가 했던 비즈니스도 좋은 비즈니스는 아니었다. 젊은이들한테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돈을 벌었는데, 깨끗하게 돈을 번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단을 만들었다. 다른 목적은 없다.

내가 10대 후반부터 가졌던 고민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부조리'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지 않냐. 내가 죽고 싶어서 죽는 것도 아니지 않냐.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부조리한 것이다. 이 부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되돌아 보면 어설픈 삶을 살아온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부끄러움이 커진다.

내가 창업을 한 계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실연이다. 삼수해서 대학 들어갔는데 엄청난 절망에 빠졌다. 재수 삼수하면서 만났던 여자친구와 서울대 입학 직후 헤어졌다. 1981년에 대학교 1학년. 첫사랑과 헤어지면서 대학생활이 엉망이 됐다. 3학년 때는 완전히 무너졌다. 형편없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휴학하고 군에 갔다. 당시에는 방위가 많았다. 방위 하면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다. 별 생각 없이 빨리 결혼하자고 했다. 대학교 두 학기 남긴 채 결혼했다. 어머니한테는 하숙비는 달라고 했다. 학비도 대 주시라고 했다. 와이프는 중학교 교사였는데 결혼한 뒤 그만뒀다.

와이프한테 돈이 얼마 있냐고 물었다. 400만원이 있다고 했다. 그 돈으로 신림2동에 열두 평짜리 다세대주택을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좋았던 집이다. 방 2개에 부엌 겸 거실, 욕실이 있는… 한두 달 살다 보니 그 돈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서울대 국문과 다니는 여동생을 데리고 하숙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풍족하게 살았다. 1987년 2월24일 IMF 경제위기가 터졌다. 그때 집사람이 “돈이 3만원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걱정 마라, 내가 돈 벌어올께" 라고 큰소리쳤다.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 답이 없었다.

25일 답을 찾았다. 2월26일이 답이다. 서울대 졸업식이 매년 2월26일 열린다. 그때는 졸업식을 운동장에서 했다. 석박사를 합치면 졸업생이 1만명. 가족까지 오니까 졸업식 참석 인원이 2만명, 3만명이나 됐다. 그래, 졸업식장에서 커피 장사를 하자. 와이프한테, 내일 15만원 벌어올 테니 장사 밑돈 1만원만 달라고 했다. 옆집에 가서 커피포트 10개 빌려오고 남동생한테 친구 데려와서 같이 알바 하라고 하고… 아침 9시에 서울대 졸업식장으로 출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엄청 왔다.

그런데 커피 부스가 20개, 30개 있는 게 아닌가. 부스에서 프로판 가스로 물 끓이고 토스트도 굽고… 이들은 전문 장사꾼이고, 우리는 보온병 들고 다니면서 팔아야 했다. 동생이 그랬다. 형님, 게임 끝났습니다. 돌아갈까 생각도 했는데, 우리가 나은 게 하나 있었다. 커피 부스는 고정돼 있어서 커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부스로 가야 한다. 우리는 돌아다니며 팔 수 있었다. 졸업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축하합니다" 하면서 500원씩 받고 팔았다. 두 시간도 안돼 완판을 했다. 첫번째 창업은 이렇게 성공했다.

커피를 팔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똑같은 말을 했다. “어, 니가 이게 웬 일이냐?” 서울대생이 서울대 졸업식장에서 커피를 파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들 놀랐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했기에 동태찌개집 가서 저녁회식을 했다. 동생들한테 알바비도 챙겨주고… 그런데 그날 전화가 엄청 걸려왔다고 했다. 내가 받았더니 하숙집 아줌마였다. 사실 하숙할 때 아줌마 속을 많이 썩였다. 밤 늦게 들어오지, 낮 12시에 일어나서 밥 달라고 하지, 음악 크게 틀어놓지… 엄청 귀찮은 하숙생이었다. 졸업도 안 하고 결혼 하더니 졸업식장에서 커피 장사를 해? 그 말을 듣고 열 받아서 나한테 전화를 하셨다. 너 장가부터 가더니 꼴 좋다. 난리를 쳤다. 그렇게 사정이 어려우면 얘기를 할 것이지… 그러면서 과외할 곳을 소개해 주셨다.

3월2일 첫 과외를 시작했는데 그때 운명의 한 분을 만났다. 손 선생이 과외 가서 만난 여학생 이야기. 딱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는 공부 아니면 어떤 것도 구원할 수 없다. 가로 세로가 비슷하고, 온갖 고민에 찌든 얼굴… 내가 가르치는데 얼굴도 안 들고 대들었다. 그래서 탁자를 탁 치면서 “5분만 얘기 하자"고 했다. 너는 공부 안 하면 어떤 것도 너를 구원 못해! 이렇게 말했더 고개를 들고 노려봤다. 너는 공부도 엉망이고… 이렇게 살면 니 인생은 창녀보다 못할 거다. 공부 안 하면 결국 미국으로 유학 보낼 거고, 성형하고 몸매관리 하고 들어와서 너를 팔겠지. 한 재산 싸들고 시집 가겠지. 그게 뭐냐. 창녀는 화대라도 받는데 너는 돈까지 갖다 바치고… 대접 받으며 살 것 같냐? 그랬더니 이 학생이 눈 치켜들고는, 당신 맘에 든다, 나도 그런 고민 하고 있다… 이랬다. 영어는 고등학생 수준인데, 수학은 초등학교 4, 5학년 수준이었다. 그랬던 그 학생이 행정고시를 차석으로 합격했다. 지금은 고위 공직자다. 이 학생 성적이 올라가니까 소문이 났다. 방학 때는 이 학생 집이 있는 잠원동 아파트에서 층층이 내려오면서 한 시간 간격으로 과외를 했다. 이 학생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

졸업식장에서 “게임 끝났다"고 해서 그만뒀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친구들이 “니가 웬 일이냐?”고 했을 때 도망갔다면 나는 이 여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강의를 잘하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나한테 어떤 자질이 있는지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과외를 하게 됐는데… 과외를 인생의 직업으로 할 수는 없지 않냐.

87년 8월 졸업을 했는데 답이 안 보였다. 고민을 하다가 타협을 좀 했다. 2년쯤 열심히 과외를 해서 1억원을 모아 독일로 유학을 가자… 이렇게 생각하고 2년 동안 과외를 했다. 학원 가서 하는 과외로는 안된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월 100만원 남짓 아니냐. 그때 월급쟁이 초임이 30만원쯤 됐다. 그래서 혼자 전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2년 간 2억원을 벌었다. 혼자 전 과목을 하다 보니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걸 썼다. 여름방학 때는 9박10일 지옥훈련을 했다. 터미날 옆에 있는 50평형대 집에서 했다. 그집 아이는 공짜, 나머지 9명 어머니들한테는 하루씩 와서 밥을 하라고 했다. 10명이 9박10일 지옥훈련. 학생들 신발을 욕조에 빠뜨려놓고 못 나가게 했다. 시작할 땐 군에서 하는 PT체조로 혼을 빼 놨다. 그때는 학력고사에 암기과목이 많았는데 하루 한 과목씩 끝냈다. 일정 수준에 달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했다.

독서실 사업도 했다. 독서실 2개 인수해서 총무 앉혀놓고 사업을 했는데 오래 할 일은 못됐다. 특히 아버지가 야단 치셨다. 니는 내 아들 아니다, 서울대까지 나와서 뭐 하고 자빠졌냐… 하셨다. 명절 앞두고 전화를 했더니, 앞으로는 내려오지 마라, 하셨다. 독서실 사업 2년 하고 접었다. 이번엔 아버지 꿈대로 해 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내가 판사나 검사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사시 공부를 하고 5월8일 1차 시험을 치렀는데… 공부 안했다. 일주일 하고는 때려치웠다. 나는 당구를 44시간 연속으로 친 적도 있다. 첫사랑과는 2시간 반 동안 키스를 하기도 했다. 내가 몰입을 잘 하는 편이다. 두세 달 공부하고 사시를 봤는데 그 다음날 아주머니들이 여럿 찾아왔다. 다시 시작하시죠, 우리 애들 급합니다. 그때 답이 안 보여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90년 9월15일. 아들, 딸, 와이프가 교회에서 예배 마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아들이 죽었다. 와이프랑 딸은 의식불명이 됐다. 일주일 간은 정말 힘들었다. 신한테 엄청 매달렸는데… 허탈했다. 와이프랑 딸이 한 달만에 깨어났고 세 달만에 퇴원했다. 정상이 아닌 두살배기 딸.. 5월에는 다친 곳이 재발했다. 6월에는 딸도 죽었다. 딸이 죽고 나니까… 내가 망했구나, 완전히 망했구나, 싶었다. 가족들한테 빨리 묻자고 했다. 오후 3시에 충북 공원묘지에 묻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쯤 자고 오후 6시에 학원 가서 수업을 했다. 다른 답이 없었다. 일주일에 60시간, 72시간씩… 엄청 강의를 했다.

학생들 가르치면서 안정이 됐다. 96년에는 1년 간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비즈니스를 하자. 되돌아 보니 87년부터 내가 늘 윤리 고민을 했다. 소수 학생들한테 강의를 했는데, 사회윤리적으로 보면 부잣집 아이들 성적 끌어올려준 거 아니냐, 그러면 가난한 집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떨어진다, 사교육, 문제다. 내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서른여섯에 이런 고민을 했다. 그 당시 학원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월 4, 5천만원은 됐다. 지금으로 치면 월 2억원쯤 된다. 그런 사업을 접었다. 어머니는 “목사가 돼라”고 하셨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하신다. 내가 목사 하기에는 너무 많이 타락했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불쑥 꺼내든 답 중 하나가 학교다. 학교를 만들면 잘하지 않겠냐, 제2의 상상고를 만들자. 이런 거였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찜찜했다. 내가 고민하는 게 교육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그럴싸한 지위와 명예를 얻으려는 얄팍할 술수가 아닌가. 많이 울었다. 여러분도 성공하면 타락할 수 있다. 돈 뒤에는 타락이 온다. 다시 고민했다. 학교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도 ‘사농공상’ 의식이 남아 있고 ‘사'자를 존중하지 않냐. 사농공상은 생산성이 낮은 농업사회에서 나온 사회구조다. 지금은 생산성이 엄청 좋아졌다. 반대가 돼야 한다, ‘상공농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비즈니스 하게 된 이유다. 이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아직도 공무원 정치인이 대접받는다. 서른여섯에 그런 고민을 하고 윤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업을 하기로 했다.

기업을 하려고 보니 무얼 할까? 고민이 됐다. 강의. 이것으로 기업을 하자, 그 대신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은 하지 말자, 그랬다. 92년 11월31일 경기도 이천 가서 2000년 이후 무얼 할까 구상했다. 그것이 ‘이천구상'이다. 34시간 잠도 안 자고 고민해서 답을 찾았다. 지금도 내 방에 걸어놓고 있다. ‘Root 97 신화창조'다. 마흔살이 되는 97년 이후 비전이다. 기업 경영 철학으로 R(Reasonable, 합리적인), O(Organic, 조직적인), O(Open, 열린 마음), T(Together, 함께) 4가지를 정했다.

그리고는 대중강의부터 시작했다. 통합사회 강의를 했는데, 처음엔 8명이던 수강생이 2천명, 5천명으로 늘었다. 99년에는 홈쇼핑을 보다가, 백화점이 집으로 오는구나, 그럼 학교가 집으로 오고 학원이 집으로 오면 되겠네, 라고 생각했다. 2000년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회사를 만들었다. 내가 지분 70%를 갖고 강사들한테 1억씩 내게 해 지분을 갖게 했다. 이로써 온라인 강의 상용화에는 성공했지만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옮겨놓는데 그쳤다. 오프라인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진 못했다.

손주은32.jpg

이하 생략. 손주은 회장의 강의 마지막 부분은 듣지 못했다. 급한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서 받아야 했다. 그래도 오래 여운이 남는 강의였다. 울림이 큰 강의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기업인. 난관을 똘끼로 극복하고, 슬픔을 일 몰입으로 이겨낸 분,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 윤민창의투자재단을 통해 후배 창업자들에게 큰 힘이 돼 주길 기대한다. (사진제공: 프라이머 이정훈 팀장, 끝)


2017년 6월 30일 금요일

중국 “2030년까지 인공지능 세계 최강 되겠다"

아침에 ‘중국 인공지능(AI)’에 관한 기사를 관심 갖고 읽었다. 어제(29일) 중국 텐진에서 ‘World Intelligence Congress’라는 인공지능 행사가 열렸다, 과학기술부장관이 인공지능 분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2030년까지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기사다. 미국 일각에서 중국이 인공지능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걸 제한하자는 얘기가 나온다는 기사도 있다.


중국.png


UPI 기사. 중국이 어제 첫 인공지능 서밋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고위 관리들이 인공지능 분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과학기술부장관은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중국인 일상생활에 인공지능을 적용한다는 내용의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정책에는 천진을 ‘현금 없는 도시’로 만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중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알리바바와 협력하고 있다.


바이두 CEO는 중국 민간 기업들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가 될 거라고 말했다. 현재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이 앞서 있지만 중국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미국 테크 기업들을 따라잡거나 추월하는데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AI 논문 중 상당수가 중국어로 씌여지고 있다. 이것(인공지능)은 우리의 사명이다.” 이번 서밋에서는 특히 자율주행차가 화제였다. 63개 팀이 경진대회에 참가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기사. 중국 과학기술부장관 완 강은 어제(29일) 인공지능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고 곧 발표할 거라고 말했다. 핵심은 4가지. AI 분야 경쟁력 제고, AI 기술 적용, AI로 인한 위험(실직 등) 관리 정책 도입, 국제협력 등이다. 완 강은 World Intelligence Congress 기조연설을 했다. AI 분야에 얼마를 투입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3월에는 전인대에서 AI 기술 연구 특별기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 청사진에는 AI 인재를 빠르게 확보하는 방안,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 AI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촉진하는 방안도 포함될 거라고 한다. AI 분야는 현재 미국이 앞서 있지만 중국은 결국엔 자기네가 세계 최강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여러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바이두 CEO는 “중국에는 데이터가 있고, 시장이 있고, 인재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는 실리콘밸리에서 AI 인재들을 앞다퉈 데려오고 있다. 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 인재들이다.


와이어드 기사. 존 코닌 상원의원이 외교위원회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인공지능 신기술 투자에 대해 개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위험하다. 중국은 미국이 앞서가는 분야에 투자하려고 하는데 미래 군사력의 핵심이 될 기술이다. 이런 추세를 바꾸지 않으면 어느 날 이런 기술이 중국산 장비에 적용되고 군사적 충돌이 생길 때 미국에 불리한 쪽으로 사용될 수 있다. 코닌은 중국이 로봇과 인공지능 분야에 관심을 쏟는 게 특히 염려스럽다며 중국의 기술 기업 투자를 제한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최근 트럼프 정부가 이와 비슷한 정책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하생략)


여기까지. 요즘엔 세계 어느 나라든 인공지능이 큰 관심사인 것 같다. 최근 우연히 인공지능에 관한 강연을 들었는데, “인공지능 분야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 교육이 산업현장을 따라가지 못한다", “교육 개혁이 시급하다”고 했다. 창업계에서도 인공지능이 단연 화두다. 인력이 빵빵한 스타트업에는 입도선매식 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 (끝)

2017년 6월 29일 목요일

“중국의 강점은 코스트가 아니라 스피드다"

중국 선전에 ‘핵스(HAX)’라는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가 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보육하고 투자도 하는 곳이다. 이 핵스의 파트너인 벤 조페(Ben Joffe)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중국의 강점은 코스트가 아니다. 그건 스피드다.” 동의한다. 요즘 중국이 빠르게 치고 나가는 걸 보면서 놀라곤 한다. 기사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중관촌.jpg


중국은 더이상 짝퉁이나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고속 혁신국가’로 변신했다. 핵스의 파트너인 벤 조페가 그렇게 말했다. 중국에서는 “샤오미제이션(Xiaomization)"이란 말을 쓴다. 샤오미의 강점은 고속으로 상품을 개발해 내놓는 것인데, 샤오미가 상품을 내놓는 순간 그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궁지로 몰린다. 샤오미는 지금까지 77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 4개는 이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이 됐다.


‘샤오미제이션’ 사례. 핏빗이 중국에서 운동량 측정 스마트 밴드를 팔았는데 샤오미가 13달러짜리를 내놓는 바람에 접어야 했다. 다른 분야도 안전하지 않다. “중국의 강점은 코스트가 아니다. 그건 스피드다. 모든 것이 스타트업 스피드로 돌아간다. 일요일 밤에 납품업자한테 부품 좀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내일 아침 보내주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조페가 말하길... 중국은 지금 연구 중심지로도 뜨고 있다. 전 세계 일류 대학, 일류 기업들이 중국에 연구소를 두기 시작했다. 중국은 올해 특허 출원에서도 일본을 추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가 된다. 중국에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매우 활발하다. 투자금이 넘친다. 특히 엔젤 투자가 그렇다. 첫번째 라운드 투자 금액을 비교해 보면 중국이 미국보다 크다. 중국에서는 빨리 치고 나가야 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80년대 일본을 닮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다.”


작전지휘부.JPG


여기까지. 중국은 더이상 ‘만만디(慢慢的)'가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 매우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다. 베이징에서 중국 창업자한테 물었다. “니들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느냐?” 답은 간단했다. “전쟁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실무자끼리 만나면 쌍소리가 튀어나온다. 빠르게 치고 나가지 않으면 당한다.” 이 친구들 참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빨리빨리'는 우리의 강점이었는데 이젠 대놓고 '스피드'가 자기네 강점이라고 말한다. (끝)

2017년 6월 26일 월요일

테슬라 그만둔 젊은이, 숙취해소음료로 대박 터뜨리나

“인생, 한 방”이라더니 이렇게 갑자기 바뀌기도 하는구나. 이시선(Sisun Lee). 미국 캘리포니아 베이에어리어에 사는 한국인 엔지니어. 한국나이 28세(?). 징가, 페이스북, 우버를 거쳐 최근까지 테슬라에서 일했고, 이달 초 테슬라를 그만두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이 젊은이의 창업 스토리를 길게 소개했다.

숙취해소음료.jpg

간단히 얘기하면 이렇다. 한국 와서 친구들이랑 떡이 되게 술을 마셨는데 술 마시기 전에 친구들이 준 숙취해소음료를 마셨더니 아침에 거뜬하더라. 미국 가서 온라인으로 주문해 미국 친구들한테 줬더니 다들 효과 짱이라고 좋아하더라. 수입판매하려고 했더니, 니가 음료 팔아 봤어? 퇴짜를 놓더라. 그래서 직접 개발하기로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로 전과하기 전에 나노테크/바이오테크 전공했던 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연구하다 보니 UCLA 연구원인 징 리앙 박사가 허브의 성분을 이용한 숙취해소에 관해 논문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헛개나무에 있는 DHM이란 성분이 핵심. 징 리앙 박사를 설득해 그 기술을 이용해 숙취해소음료를 개발했다. 한국 숙취해소음료와 달리 비타민B, C를 보강해주는 게 특징이다. 징 리앙 박사 팀의 도움을 받아 숙취해소음료를 만들었는데 효과가 짱이었다. 제품 이름은 ‘모닝 리커버리'(Morning Recovery).

이 제품을 알리기 위해 모닝 리커버리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페이스북에 올린 뒤 친구들한테 퍼뜨려 달라고 했다. 그걸 캐나다 투자자가 보고 프로덕트헌트에 올려줬다. 그 덕에 단숨에 2위까지 올라가 난리가 났다. 모닝 리커버리를 시험삼아 마셔보겠다며 신청한 사람이 1만명, 2만명, 3만명… 쇄도했다. 슬로벤처스와 500스타트업스 엔젤 투자도 받았다. 결국 이달 초 테슬라를 퇴사했다. 다음달 5일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이것이 기사의 줄거리다. 창업자라면 사연 없는 사람이 없지만 이시선 씨의 경우는 유별나다. 한국 와서 친구들이랑 떡이 되게 술 마신 게 인생을 바꿔놨다. 이시선 씨의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를 보니 임정욱 센터장, 김영덕 상무, 하영석 대표, 버나드 문, 존 남 대표 등이 있다. 실리콘밸리 한국인 사이에서는 알려진 젊은이인 것 같다. 대박 터뜨리길 바란다. (끝)

2017년 6월 15일 목요일

컨슈머리포트 “현재는 갤럭시S8+가 최고 폰이다"

미국 ‘컨슈머리포트’라고 하면 정평이 난 곳인데, ‘갤럭시S8+’를 최고의 폰으로 꼽았다. ‘아이폰7’보다 높게 평가했다. 카메라 좋고, 디스플레이 좋고, 배터리 수명이 길다는 게 이유다. 반 년 늦게 나온 제품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정상이다. 석달쯤 후 ‘아이폰8’이 나오면 다시 뒤집혀야 정상이다. 두 폰을 비교하며 써 보지 않아 개인적인 평가는 보류하겠다. 다만 ‘갤럭시노트7 배터리 파문'으로 구겨진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절치부심했을 삼성 엔지니어들의 노고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다.


1.jpg

컨슈머리포트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폰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그래도 항상 최고의 폰은 있다. 현재는 삼성 갤럭시S8+가 최고다. 그 다음은 간발의 차이로 갤럭시S8이다. 카메라 성능, 배터리 수명, 방수 디스플레이… 이런 걸 원한다면 적당한 폰이 있다. (가격이 좀 세긴 하지만). 갤럭시S8+는 840달러, S8는 720달러.

기존 삼성 폰에 비해 몇 가지 측면에서 뛰어나다. 첫째, 양 옆에 베젤이 없다. 위 아래 베젤도 아주 얇다. 미니멀리스트, 모던, 엘리건트. 같은 크기의 폰에 비해 화면이 더 크다. 둘째, 스마트폰 화면비율은 대부분 16:9인데 새로 나온 삼성 폰은 18.5:9이다. LG G6도 그렇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손에 쥐면 그립감이 다르다. S8은 5.8인치, S8+는 6.2인치. 종전의 S7과 S7 엣지 화면은 각각 5.1인치, 5.5인치였다. 셋째, 뒷면 지문 스캐너 위치가 좀 잘못됐다. 화면 잠금을 풀 때는 별 문제 없다. 그런데 후면 카메라와 나란히 있다 보니 스캐너를 찾다가 카메라 렌즈에 얼룩을 묻히곤 한다.

배터리 수명. 작년 가을 삼성 갤럭시노트7은 심각한 배터리 문제를 드러냈다. 비행기 탈 때 가져갈 수도 없었다. S8과 S8+에서는 이런 문제는 없다. 새 폰은 배터리 수명이 최고 수준이다. 통화시간 테스트에서 S8+는 26시간, S8은 23시간을 찍었다. LTE 망에서 데이터를 송수신할 때는 S8+는 17.5시간, S8은 14.5시간. 와이파이 상태에서 웹 브라우징을 할 땐 S8+는 14.5시간, S8은 13시간. 배터리 수명은 큰 폰이 더 길긴 하다. 아무튼 S8+가 S8보다 약간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배터리 수명 때문이다.

카메라 성능. 이번에 평가한 몇몇 폰은 카메라 성능이 아주 좋았다. S8+와 S8이 약간 더 나았다. 색상이 풍부하고 저조도 촬영 때 좋았다. 동영상 성능도 좋았다. 삼성 폰은 소프트웨어로 이미지를 너무 다듬는 게 문제였다. Over-sharpening. 이렇게 하면 일반 기준으로는 평가가 잘 나온다. 선명할수록 좋으니까. 그러나 이미지 전문가들은 사진을 보면 어느 게 좋은지 단번에 알아낸다. 최고 평가를 받은 폰 가운데 아이폰7 플러스나 LG G6 등은 후면에 듀얼 카메라를 탑재했다. 줌 성능을 높이고 광각 촬영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삼성이 이번에 내놓은 폰은 여기까지 가진 못했다. 이것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하 생략)

3.jpg

삼성 폰에 대해 좋게 평가한 보고서를 소개하긴 처음이다. 그동안 아이폰이나 LG 폰을 썼기 때문에 삼성 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삼성이 작년 가을 받았던 수모를 어느 정도 만회했나 보다, 정도로 생각한다. 컨슈머리포트가 정평이 난 곳이긴 하나 평가란 원래 사람마다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서너 달 후에 나올 ‘10주년 아이폰'을 기다리고 있다. (끝)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손정의 회장이 6년 전에 했던 소프트뱅크 ‘30년 비전 이야기'

소프트뱅크가 최근 로봇 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직후 갑자기 전에 썼던 글이 읽고 싶어졌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2011년 6월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했던 기자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그때 손 회장은 30년 후, 300년 후에 관해 얘기했다. 매우 감명 깊게 들었다. 한국에 손정의가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옛 블로그가 폭파된 바람에 그 글을 읽지 못해 아쉬웠는데 구글드라이브를 정리하다 보니 백업 파일이 있다. 당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조금 줄여서 공유한다.

손정의101.jpg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어제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 기자들 앞에 선 이후 11년만이라고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참석했다가 큰 감명을 받았다. 손 회장은 한 시간 동안 100쪽에 가까운 자료를 넘기며 얘기했다. 일본 도호꾸 대지진 후 두 달 동안 고민했다, 소프트뱅크가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고 했다. 30년 후, 300년 후 얘기를 했다.

“보다폰재팬 인수할 땐 모든 것을 걸었다”

2006년 2조엔을 들여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해 모바일 분야에 진출했다. 침몰하는 배에 탄 격이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사흘 동안 주가가 30%나 곤두박질했다. 이익이 급감하는 기업을 인수했으니 적자를 모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다폰재팬 인수 후 소프트뱅크 이익은 급격히 늘었다. 지금은 호감도 1위 기업이 됐다. 아이폰 도입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인수 전에는 가입자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인수 후 급증했다.

“오리엔탈 특급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15년 전에는 미국에서 인터넷 회사에 적극 투자했다, 10년 전에는 일본에서, 5년 전에는 중국에서 적극 투자했다. 투자한 회사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자상거래, 포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동영상 서비스 업체 등에 투자했다. 한국에서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127개 기업에 2억3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것이다. 한국의 선진적인 기업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제휴할 것이다.

최근에는 KT와 손을 잡고 데이터센터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대지진 후 전력이 부족하다. KT 지원을 받아 데이터센터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 아시아 국가에서 사업을 적극 전개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진하는 오리엔탈 특급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중국 한국의 인터넷 회사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로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지진으로 인생관이 바뀌었다”

소프트뱅크는 창업 이후 정보혁명, 정보기술(IT)에만 집중했다. 3월11일 발생한 대지진이 내 인생관까지 뒤흔들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회사란 무엇인가, 보람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일본은 지금 발전 능력이 반으로 줄었다. 창업 이후 정보혁명에 인생을 바치겠다고 했고 이 비전과 철학을 실천해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겠는가. 내가 내 기업만 잘 꾸리면 되겠는가 생각했다. 2개월 고민 끝에 정보혁명도 에너지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자연에너지협의회라는 걸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일본에는 47개 광역자치단체가 있는데 34개를 설득해서 이 협의회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원전 사고가 속출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자연에너지를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지진이 덜하니까 훨씬 안전하게 원전을 운영할 수 있겠지만 중대 원전사고는 전부 인재였다. 사람 잘못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 이런 사고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지진이 없다고 안심해선 안된다. 일본은 지금까지 원자력과 화력을 중심으로 발전을 했는데 자연 에너지를 포함해 에너지 체제를 재편하기로 했다. 소프트뱅크는 신재생 에너지에 관한한 아마추어다. 우리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면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서도 공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행복이 무엇인가. 슬픔은 무엇인가. 트위터를 자주 사용하는데,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소프트뱅크의 30년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트위터를 통해 가장 슬픈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하루 밤 사이에 2500개 답이 들어왔다. 이걸 분석했다. 가족/친구 등의 죽음, 고독, 절망… 한 단어로 “고독”이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도 물었는데 사랑, 미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공통점을 말하자면 “감동”이었다. 보는 감동, 배우는 감동, 만나는 감동, 사랑하는 감동,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이런 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철학을 더욱 명확히 갖게 됐다.

소프트뱅크의 300년 성장 DNA

30년 비전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300년 동안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생각했다. 소프트뱅크는 30년을 걸어왔지만 30년이 아니라 300년 존속하고 계속 성장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300년 단위로 생각했다. 30년 앞을 내다보기는 쉽지 않다. 이럴 경우엔 차라리 멀리 봐야 한다. 그래서 300년을 생각했다. 그러면 과거 300년은 어땠나. 300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철도 증기기관차 등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기계가 사람들한테 좋은 것인가, 일자리를 뺏어가진 않을까 논의했다. 노동자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생각해 파괴까지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돕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00년 후의 세계… 큰 변화를 맞을 것이다. 현재 모습은 정보 빅뱅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과거 100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인간은 1초에 0.0000006회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했다. 지금은 1초에 100억회 계산한다. 100년 동안 계산능력이 3500조배 늘어난 셈이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0과 1의 2진법을 사용한다. 트랜지스터도 0이냐 1이냐…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세포가 인간의 뇌에는 300억개가 있다. 트랜지스터가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시점을 계산해봤다. 20년 전에 계산했을 땐 2018년이 나왔다. 2년 전 다시 계산해 봤는데 역시 2018년이 나왔다. 트랜지스터의 연산능력은 100년 후에는 10의 20승, 또 100년 후에는 10의 40승, 또 100년 후에는 10의 60승… 이 얼마나 엄청난가. 인간과 아메바의 세포 차이는 300억배다. 300년 후에는 이 차이보다 인간과 칩의 차이가 훨씬 클 것이다. 10의 60승. 인공두뇌.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날 것이다.

패러다임 쉬프트 속에서 인간은 로봇처럼 정해진 일만 할 것인가. 로봇이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세상이 와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때가 되면 슈퍼인텔리전트는 엄청난 활약을 할 것이다. 그때 로봇은 지금 로봇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을 재해로부터 구해줄 것이고, 구급의료도 해줄 것이고, 간호도 해줄 것이다. 로봇 종류가 생명체 종류보다 많아질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파트너로서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 300년 후 기계는 노동자의 적이 될까, 노동자의 편이 될까, 일자리를 뺏을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까. 답을 얻었다.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슈퍼인텔리전스를 가진 기계가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공존할 것이다. 인간의 지혜/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결하는데, 지구를 지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손정의103.JPG

“앞으로 30년간 라이프스타일이 확 바뀐다”

30년 후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메모리 칩의 용량은 지금의 100만배로 커질 것이다. 통신속도도 300만배 늘어날 것이다. 30년 후 한 대의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보면, 노래는 5000억곡, 신문은 3억년 분량, 영화는 300년 분량… 라이프스타일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다. 무한대의 저장공간, 무한대의 클라우드… 극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종이 교과서,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도 철저하게 바뀔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30년 후 ‘톱 10’ 기업이 되고 싶다”

앞으로 30년 또는 300년 동안 소프트뱅크의 전략은 무엇인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00년 전에는 톱 10 기업 가운데 4개가 철도회사였다. 철 회사, 석탄 회사, 은행, 철도회사… 현재는 철도회사는 하나도 없다. 석탄회사도 없다. 새로 들어온 회사에는 애플도 있고, 중국 회사도 있다. 소프트뱅크는 30년 후 세계 톱 10 회사가 되고 싶다. 200조엔 정도의 시가총액을 예상한다. 도산하지 않고 존속한다는 것 자체만도 대단하다. 일본에서 30년 동안 존속하는 기업은 0.02%밖에 안된다. 99.98%가 사라졌다.

“소프트뱅크 계열사들도 소프트뱅크 브랜드 안쓴다”

300년 동안 지속하고 성장하는 기업. 이런 기업의 DNA를 어떻게 설계할까. 20세기형 기업은 하나의 브랜드를 유지했고 진화 속도도 느렸다. 21세기형 조직 전략은 멀티 브랜드다. 소프트뱅크는 800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고 계속 늘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들한테 ‘소프트뱅크’란 브랜드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쓰비시의 경우 자동차, 은행, 무역, 화학 등 여러 자회사들이 “미쓰비시”란 브랜드를 쓴다. 삼성도 삼성 삼성 삼성… 싱글 브랜드로 큰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그렇지 않다. 브랜드가 각기 다르다. 소프트뱅크 브랜드를 허용하는 기업은 내가 CEO를 맡고 있는 몇 개 회사 뿐이다. 나머지 800개는 소프트뱅크 브랜드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왜냐? 그렇게 해야 의사결정이 빠르고 피라미드 형태의 중앙집권을 피할 수 있다. 인터넷은 스피드 경쟁이다. 수많은 기업이 인수되고 망하는데…소프트뱅크 브랜드 붙이면 이걸 지키기 위해 중앙집권을 하게 되고 새로운 투자도 통제해야 하고… 모든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그래서 소프트뱅크 브랜드를 붙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각각의 회사가 자율적이고 상하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적인 관계, 수평적인 관계가 된다. 소프트뱅크 조직은 월드와이드웹처럼 각각의 회사가 연계하면서 발전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멀티 브랜드, 멀티 헤드쿼터, 멀티 CEO… 이런 식이다.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진 조직체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손정의107.jpg

“열아홉살 때 세운 50년 인생계획대로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회사는 현재는 800개이다. 30년 전 1개였는데 지금은 800개다. 이 800개가 30년 후에는 5000개로 늘어날 것이다. 5000개 시너지 그룹, 멀티 비즈니스 모델… 나는 19살 때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고, 60대에 다음 경영자에게 바턴을 넘겨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 계획대로 했다. 48세 때는 큰 승부를 걸었다. 2조엔을 들여 보다폰재팬을 인수했다. 일본경제사에서 가장 큰 인수였다. 현금 인수로는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인수였다. 나한테는 인생 최대의 도박이었다. 이것이 성공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54세인데 좀더 확실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해서 60대에 다음 경영진에게 계승하겠다.

“경쟁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할 것이다”

갑자기 승계하는 게 아니다. 작년에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열었다. 일반사원들을 교육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내 후계자, 한 사람의 인간을 발견해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300명이 지금 공부하고 있다. 20대, 30대, 40대… 2만명 사원 중 1% 200명을 선정했다. 외부에서도 100명을 모았다. 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는데 1만명이 응모해 이 가운데 100명을 선정했다. 300명 중에서 한 명이 내 후계자가 된다. 나머지는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니다. 5000개로 늘어날 소프트뱅크 회사들의 CEO도 되고 CFO도 되고 COO도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6개월에 한 번 최하위 20% 정도를 퇴출시키고 새로 충원한다. 6개월마다 새로운 인력을 넣어 엄격하게 교육하고 있다.

“정보혁명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세계 200대 기업 정도 된다. 30년 후 톱 10에 드는 게 목표인데 큰 도전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정보혁명을 추진할 것이다. 정보혁명의 새로운 테마로 최근에는 에너지 혁명이란 걸 더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정보혁명이다. 이걸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끝)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구글은 왜 팔고, 소프트뱅크는 왜 살까?

소프트뱅크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다. 알파벳(구글의 모기업)이 팔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더니 결국 팔기로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로봇 분야 선두주자다. 네발 달린 스폿이나 와일드캣이 달리는 걸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두 발 달린 아틀라스는 눈길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잘 걷는다. 바퀴가 2개 달린 핸들은 다양한 상황에서도 균형을 잡으며 빠르게 이동한다. 저런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을 왜 팔고, 왜 살까?

로이터 기사. 소프트뱅크 그룹이 걸어다니는 로봇을 만드는 2개 기업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알파벳으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사고, 도쿄에 있는 샤프트를 인수한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금요일 이렇게 말했다. “정보혁명의 다음 단계에서는 스마트 로봇이 핵심 동인이 될 것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로봇 분야에서 명백한 기술 리더이다." 샤프트는 두 발 로봇을 개발하는 팀으로 도쿄대에서 스핀오프 했다.

알파벳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로봇은 잠재력이 매우 큰 분야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샤프트가 소프트뱅크로 매각돼 차세대 로봇 분야에서 공헌할 수 있게 돼 기쁘다.” 구글은 2013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당시 안드로이드 창업자인 앤디 루빈이 구글에서 로봇 분야를 이끌었고 인수를 주도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전직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루빈이 구글을 떠난 후 로봇 팀은 구글 내에서 고전했다.

스폿미니.jpg

LA타임스 기사.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이 소프트뱅크에 되팔겠다고 밝혔는데, 양사의 전략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테크 기업이다. 스프린트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다. 로봇 분야에도 손을 댔다. 손정희 회장은 인간 능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로봇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 바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스마트 로봇이 정보혁명 다음 단계의 핵심 동인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는 2012년에 프랑스 로봇 회사 알더바람을 인수하는 등 로봇 분야에 투자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뜬다면 그건 일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이보그가 이미 성장산업이 되고 있다. 일본 소비자들은 로봇에 대해 열려 있다. 소프트뱅크 ‘페퍼'는 일본에서만 판매하는데, 노래를 부르고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지만 바퀴로 움직인다. 한 애널리스트는 “소프트뱅크가 로봇 능력을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파벳(구글)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되팔면 핵심 사업영역과 무관한 분야를 떨어내는 셈이 된다. 구글은 전혀 무관한 아이디어라도 새 매출원이 될 수 있다면 시험해보는 걸로 유명하지만 걸어다니는 로봇은 그런 분야가 아니다. “알파벳은 사용자들이 만든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인사이트를 판매하는 데이터 분석 기업을 지향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이 알파벳 주주들한테 어떤 가치를 창출할 지가 줄곧 불투명했다.”



아틀라스.jpg


여기까지다. 기업을 팔고 사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게 각자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 구글한테 뛰어다니는 로봇은 핵심 영역은 아니다. 주주들 반대가 끊이질 않고 내부에서도 말이 많아 손을 떼는 것 같다. 소프트뱅크는 로봇을 유망 분야로 보고 꾸준히 투자를 늘려왔다. 페퍼가 아틀라스나 스폿처럼 움직인다면 재밌을 거 같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좀더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면 시장이 열릴 수도 있을 테고. 손정의 회장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로봇 강국 일본한테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너무 강한 무기가 아닌가 싶다. (끝)












2017년 6월 6일 화요일

에벤에셀 곽 대표와 강 대표의 ‘일타쌍피'

2년 전 일산 킨텍스에서 창업 관련 행사가 있었다. 벤처스퀘어가 주최한 ‘글로벌 스타트업 컨퍼런스'. 토론을 끝내고 행사장을 나오는데 한 창업자가 나를 붙들고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자기네가 개발한 기술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사진은 물론 동영상 파일까지 1/10 이하로 압축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잘 모르겠어서 그냥 “자신 있으면 디데이(디캠프 월례 데모데이)에 도전해 보세요"라고 웃으며 말하고 왔다. 그리고 잊었다.

1.jpg

바로 그 창업자가 작년 중반 디캠프 6개월 보육 프로그램인 GoD 2기에 지원해 디캠프에 입주했다. 회사명은 에벤에셀. 남자와 여자, 달랑 둘이었다. (현재는 6명). 킨텍스에서 만났던 남자는 개발자, 여자는 개발을 제외한 나머지 일을 도맡아 했다. 두 사람 모두 대표, 공동대표였다. 곽준기 대표와 강미숙 대표. 곽 대표는 늘 미소짓는 남자, 강 대표는 또순이.

2.JPG

에벤에셀은 디캠프 입주 후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어왔다. 금융권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해 상금 1천만원을 챙겼고, 미래부 공모전에서 우승해 상금 1억원을 거머쥐기도 했고… 경진대회 발표는 강미숙 대표가 도맡아 했는데 핵심을 야무지게 잘 전했다.

33.jpg

마침내 2016년 10월, 에벤에셀은 디캠프 ‘10월 디데이’에 도전했다. 50여개 팀 중에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한 5개 팀이 발표했다. 경쟁자 중에는 “또순이"로 알려진 서숙연 해빛 대표도 있었는데, 우승은 에벤에셀이 차지했다. 서 대표는 나중에 “강 대표 발표하는 걸 보고 ‘누군데 발표를 저렇게 잘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44.jpg

딱 1년만이었다. 에벤에셀은 디캠프 센터장이 ‘디데이에 도전해 보라’고 말한지 1년만에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디데이 우승 후에는 본엔젤스 투자를 받았고, 기업을 상대로 B2B 영업을 해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연초에 잡은 올해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작년의 5배 이상. 목표를 새로 늘려잡아야 한다고, 처음으로 흑자를 낼 것 같다고 했다.

55.jpg

일주일 전, 곽 대표랑 강 대표가 디캠프 사무실로 내려왔다. (에벤에셀 사무실은 5층, 디캠프 사무실은 3층.) 둘이 같이 내려와서 좀 의아했다. “좋은 일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었고, “결혼하세요?”라고 물었더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청첩장을 꺼내 내밀었다. 둘이 결혼하기로 했다고, 한 달쯤 전에 강 대표가 ‘부모님이 재촉한다’고 말하자 곽 대표가 “나랑 같이 사는 건 어때요?”라며 즉석 프로포즈를 했다고... 강 대표가 깜짝 놀랐고 받아들였다고... 양가 부모님 상견례를 했고, 한 달여만인 6월6일 결혼한다고 했다.

77.jpg

둘은 직장 선후배다. 2, 3년 전 같이 에벤에셀을 설립했는데 킨텍스에서 우연히 디캠프 센터장을 만나 디캠프와 인연을 맺었다. 사업을 같이 하면서도 서로를 결혼 상대로 생각하진 않았고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둘은 에벤에셀이 성장궤도에 진입할 무렵 결혼에 골인했다. 사업도 성공, 결혼도 성공. 일타쌍피. 오늘 결혼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두 사람이 합심해 더 크게 성공하길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