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5일 수요일

창업계 행사에 대기업 임직원들의 발길이 잦아진 이유

‘우리를 망하게 할 만한 스타트업 어디 없나요?’ 오늘자 한국경제신문에 이런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된 지금 상황에서는 대기업 기업문화 혁신이 매우 시급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리더의 한 마디에 기획안이 뒤틀어지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기업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세계적인 ‘혁신 경쟁'에서 이길 수 없지 않겠는가. 신문사에 보낸 칼럼 원문을 블로그에 옮겨 싣는다. (광파리)

최근 아주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서울 선정릉공원 인근에서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 디캠프(D.CAMP)에 창업 3세인 대기업 부회장이 불쑥 찾아왔다. 필자는 외부에서 점심을 먹다 말고 뛰어들어와 손님을 만났다. 이 분은 전무급 참모 한 사람만 대동한 채 왔고 창업계 동향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사실 디캠프에는 거의 매일 방문객이 찾아온다. 국내에서도 오고 해외에서도 온다. 작년에는 프랑스 대통령이 다녀갔고, 국무총리, 장⋅차관, 시장, 도지사, 대사 등이 끊임없이 둘러보러 온다. 대기업 부회장이라고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한테는 대통령이나 장⋅차관보다 대기업 ‘실세’의 방문이 훨씬 더 반가웠다.

우리는 최근 10년 새 정상에 오른 글로벌 기업들이 한방에 훅 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노키아가 그랬고, 블랙베리・모토로라가 그랬다. 더구나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한국 대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혁신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스타트업한테 혁신적인 문화를 배워야 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게 다급하다면 최고책임자들이 디캠프 같은 곳을 자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업자든 전문경영인이든 좀체 오지 않았다. 대만 폭스콘의 궈타이밍 회장이 디캠프를 방문해 자기네가 만든 애플 컴퓨터를 대량 후원하고 간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하나씩 떠맡아 자기네 앞가름도 벅찬 탓인지 창업계의 다른 곳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작년 말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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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는 확연히 달라졌다. 창업계 행사에 대기업 임직원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투자 부서 명함을 내미는 이들이 특히 많다. 기업벤처캐피탈(CVC)이 이렇게 많이 생겼나 싶을 정도다. 대기업들은 성장 가능성이 크고 자기네와 협업할 수 있거나 언젠가는 자기네 목에 칼을 들이댈 만한 스타트업을 찾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3월 ‘스타트업(Start Up) 삼성 컬처 혁신’을 선언했다. 달라진 산업 패러다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조직이 커지다 보면 관료화되기 마련이고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선언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의 ‘컬처 혁신 선언'은 우리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본다.

보수적인 기업으로 유명한 롯데가 지난달 디캠프 인근에 ‘롯데액셀러레이터'를 개소한 것도 큰 의미를 갖는다. 롯데는 자기네가 선정한 스타트업을 직접 보육하고 사내 벤처도 이곳에 입주시켜 육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창업 3세 부회장이 디캠프를 찾은 그룹 역시 롯데와 마찬가지로 자체 보육공간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창업계에 대기업 임직원들의 발길이 잦아진 것은 반갑지만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는다. 기업문화 혁신은 최고책임자가 진두지휘하고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국한해서 생각할 일도 아니다. 혁신을 통해 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회 각 부문에서 혁신이 가능한 방향으로 조직문화를 바꾸야 한다. 청와대부터 조직문화를 바꿨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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