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삼성 타이젠과 구글 X폰을 어떻게 볼까?


출근길에 읽었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아 간단히 메모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이 안드로이드 강자로 뜨자 구글이 삼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썼습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얘기죠. 그런데 시점이 미묘합니다. 삼성이 타이젠 관련 발표를 하기 직전에 기사가 나왔습니다. 삼성은 오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전시회가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타이젠과 관련해 뭔가를 발표합니다.

타이젠(Tizen) 아시죠? 삼성이 인텔, 리눅스재단 등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다용도 개방형 플랫폼입니다.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OS라면 타이젠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물론, PC와 스마트TV, 자동차용 기기 등에도 탑재할 수 있는 다용도 OS를 표방합니다. 사물까지 인터넷에 연결되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OS라고 할 수 있겠죠. 2.0 버전까지 공개됐고 올해 안에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나온다고 알려졌습니다.

구글이 삼성을 경계하는 것과 타이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구글은 2004년 앤디 루빈이 만든 개방형 플랫폼(신생기업)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뒤 여러 폰 메이커, 이통사들과 OHA를 결성했고,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이듬해인 2008년 HTC가 첫 안드로이드폰을 내놨습니다. 이때부터 HTC, 모토로라, 삼성 등 ‘안드로이드 삼총사'가 안드로이드 생태계 조성을 주도했고 이제는 안드로이드가 아이폰(iOS)를 압도합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앞세워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했습니다. 안드로이드 폰/태블릿에 자사의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앱이나 위젯을 탑재합니다. 사실상 ‘안드로이드 킹'입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기업은 구글이 아니라 삼성입니다. 지난해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80억 달러를 벌었고 삼성은 안드로이드 기기로 600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안드로이드 제1 장수인 삼성이 ‘킹'인 구글을 위협하는 형국이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삼성으로서는 아찔할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모바일을 탑재한 폰으로 노키아를 추월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애플이 나타나 판이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윈도모바일폰으론 도저히 아이폰을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재빨리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넘어갔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없었다면 삼성으로선 아이폰에 대적할 방도가 없었겠죠. 무명 HTC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던 구글로서도 삼성은 백만원군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윈도모바일에 큰 기대를 했다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던 삼성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멀티 플랫폼 전략'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플랫폼에 몰빵하지 않고 여러 플랫폼에 올라타는 전략을 강화한 겁니다. 주로 안드로이드 폰/태블릿을 만들어 판매하지만 윈도폰도 만들고 바다폰도 만들고... 구글과 밀월관계가 됐지만 삼성은 항상 경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안드로이드가 추락하거나 구글이 배신하더라도 살아남으려는 전략입니다.

경계하기는 구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글은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뒤에 캐나다 노텔 특허를 인수하는 등 특허 공세를 펼치려 하자 재빨리 모토로라를 인수했습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해? 삼성은 구글을 더 경계하게 됐습니다. 구글이 폰 메이커를 인수했으니 배신당할 위험이 그만큼 커졌습니다. 삼성은 노키아한테 배신당한 인텔과 강력한 스폰서가 필요한 리눅스 재단과 손을 잡고 타이젠(Tizen) 개발에 나섰던 것입니다.

구글은 삼성이 애플 라이벌로 뜨기 전까지는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레퍼런스 제품인 넥서스 폰/태블릿 개발을 여러 기업들한테 돌아가며 맡겼고 삼성한테 상대적으로 많이 맡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구글은 자회사인 모토로라와 함께 X폰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토로라도 안드로이드 장수이긴 하지만 아이폰/갤럭시폰에 대적할 만한 폰을 내는 일에 구글이 깊이 관여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구글이 하드웨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게 하는 점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크롬북 픽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전에는 삼성 에이서 레노버 등과 함께 크롬북을 개발했는데 이번에는 대만의 이름 없는 업체에 맡겼습니다. 또 있습니다. 구글이 연말쯤 미국에서 구글스토어를 연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애플스토어와 같은 하드웨어 매장을 두겠다는 얘기입니다. 하드웨어라면 삼성과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글이든 삼성이든 속내를 드러내진 않습니다. 양쪽 모두 협력관계를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할 텐데... 힘이 기울고 한 쪽이 배신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 합니다. 삼성의 타이젠 개발과 구글의 X폰 개발... 흥미롭습니다. 삼성은 타이젠에서 삼성 색채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할 겁니다. 우군을 많이 끌어들여야 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파이어폭스 OS, 우분투 OS 등 새로운 개방형 플랫폼이 등장해 판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광파리]


(추가, 3/1) 타이젠에 대해 비관적으로 쓴 글 링크합니다.

댓글 6개:

  1.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군도 없는 것이 세계 경제계 정치계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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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흥미진진 하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윗 분 말씀데로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는 - 오직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계군요.. 어찌되었건 삼성이 참 대단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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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삼성의 타이젠 개발과 구글의 X폰 개발... 흥미롭습니다. 항상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삼성이 하드에서 킹 - 이제 소프트에서도 킹이 되리라.....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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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삼성이 안드로이드 의존성에 벗어나는 기회가 될것인지?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삼성을 배척해도 된다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인지?

    WIBRO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해야 될텐데....하는 걱정이 드는군요.
    평생 구글과 함께하지는 못할테니 어짜피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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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새 플랫폼의 성공관건 요인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미 아이폰, 안드로이드에 적응해버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려면, seamless한 사용자경험과 킬러앱을 제공해야할 것이라 봅니다. 타이젠/파폭/우분투 폰 중 누가 더 먼저 카톡과 카톡게임들, 앵그리버즈나 마인크래프트를 유치하냐가 중요 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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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타이젠의 어원이 뭔가요?
    캐릭터도 무슨의미가 있는것같은데...아시면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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